본문 바로가기
환경

전기차 시대 폐 배터리 재활용 정책 비교

by jia82 2025. 9. 5.

21세기 들어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사용이 늘어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폐배터리 처리와 재활용이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일정 기간 사용 후 성능이 저하되면 교체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리튬·코발트·니켈·망간 등 희소 금속을 다량 포함한 고부가가치 자원이다. 만약 이를 적절히 회수하고 재활용한다면, 한정된 광물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시에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이를 방치하거나 소각·매립할 경우, 유해 화학물질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기후변화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유럽, 미국, 중국, 한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어떤 국가는 강력한 규제를 통해 재활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또 다른 국가는 민간 혁신 기업의 참여를 촉진해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세계 주요국의 폐배터리 정책을 비교·분석하고, 향후 전기차 시대의 자원순환 전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본다.

 

폐 배터리의 재활용 정책
폐 배터리 재활용 정책

 

유럽연합(EU)의 폐배터리 규제와 순환 경제 전략

유럽연합은 폐배터리 재활용 정책에서 앞서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EU는 2023년 ‘배터리 규제법(EU Battery Regulation)’을 발효하여,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사용·회수·재활용 전 과정을 법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 법에 따르면, 배터리 제조업체는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의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야 하며, 폐배터리는 등록된 재활용 시설에서만 처리할 수 있다.
특히 EU는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에 포함되는 리튬의 12%, 코발트의 20%, 니켈의 10%를 반드시 재활용 원료로 충당하도록 규정했다. 이를 통해 유럽은 해외 광물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배터리 생산의 자급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EU는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생산자책임재활용제, EPR)’ 원칙을 강화하여,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업체가 폐배터리 회수 비용을 반드시 부담하도록 했다.
이러한 강력한 규제는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리튬 회수 기술, 습식·건식 제련 방식, 2차 사용(ESS 재활용)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유럽의 정책은 단순한 폐기물 관리가 아니라, 순환 경제로의 전환을 견인하는 자원순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미국 - 민간 중심의 혁신적 폐배터리 산업 육성

미국은 유럽처럼 강력한 의무 규제를 시행하지는 않지만, 민간 기업의 혁신과 연방정부 지원을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트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즈(Redwood Materials)'이다. 테슬라 공동 창업자가 설립한 이 회사는 네바다주에 대규모 재활용 공장을 세우고, 사용된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리튬·니켈·코발트를 고순도로 회수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미국 정부는 2021년 인프라 투자 법안을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프로젝트에 60억 달러 이상의 지원을 약속했으며, 에너지부(DOE)는 지역별 파일럿 재활용 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또한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일부 주는 전기차 제조사에 폐배터리 회수 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전략은 ‘규제 중심’이 아닌 ‘시장 중심’ 접근이다. 즉, 민간기업이 재활용 기술을 혁신해 수익성을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산업이 성장한다는 방식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회수율 격차가 존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 국가 주도의 대규모 회수 체계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폐배터리 문제 역시 빠르게 대두된 국가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2018년 ‘신에너지 차 폐배터리 종합 이용 관리 방법’을 발표하고, 배터리 제조사와 자동차 회사에 폐배터리 회수·재활용 책임을 부과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전국적으로 10만 톤 이상의 폐배터리를 회수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이미 CATL, BYD 등 대형 배터리 기업들이 자체 재활용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또한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배터리 코드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여, 생산된 배터리가 어느 차량에 장착되고, 언제 폐기되는지 전 과정을 기록한다.
하지만 중국의 정책은 회수율 향상에는 성공했으나, 일부 중소 재활용 업체가 비공식적으로 유해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등 환경 규제 미흡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인프라와 정부 주도의 집중적 관리라는 특징 덕분에, 중국은 단기간에 세계 최대 규모의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 - 기술 중심의 자원순환 모델

한국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는 작지만, 첨단 재활용 기술을 기반으로 한 폐배터리 정책을 발전시키고 있다.
한국은 2022년 ‘전기차 폐배터리 자원순환 특별법’을 시행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전기차 폐배터리를 우선적으로 회수한 후, 이를 공공·민간 연구기관과 기업이 공동으로 재활용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습식 제련을 통한 고순도 금속 회수, ESS(에너지저장장치) 2차 활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포스코, LG에너지솔루션 등이 배터리 재활용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부터 니켈·수소 배터리 재활용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현재는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클로즈드 루프(closed-loop) 모델을 구축 중이다. 이는 사용된 배터리에서 추출한 원료를 다시 동일한 회사의 신제품 배터리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파나소닉, 스미토모 금속광업 등이 이를 선도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도 희소 금속 자원 확보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시장 규모보다 기술 경쟁력과 효율성에 집중하여, 향후 글로벌 재활용 시장에서 강력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시사점과 미래 전망

폐배터리 재활용 정책 비교를 통해 드러난 핵심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 유럽(EU)은 강력한 법적 규제를 통해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순환 경제로의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 미국은 민간 주도의 혁신을 중심으로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회수 체계를 통해 단기간에 시장을 키우고 있다.
- 한국과 일본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자원 회수 모델을 발전시키고 있다.
향후 폐배터리 재활용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전기차 산업의 공급망 안정성과 국가 안보 전략과 직결된다. 리튬·코발트와 같은 핵심 원료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자원이기 때문에, 각국은 자국 내 재활용률을 높여 자원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글로벌 배터리 표준화 협약’이 필요하다. 만약 각국이 배터리 생산, 회수, 재활용에 관한 공통 규범을 마련한다면, 국제 거래 비용을 줄이고 전 세계적으로 자원순환 경제를 가속화할 수 있다.
결국 폐배터리 재활용은 전기차 시대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 자원순환 전략이며, 앞으로 각국의 정책은 더욱 정교하고 협력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