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아름다운 자연과 세계적인 해변 관광지로 잘 알려진 나라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는 국가로도 지목되어 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필리핀은 연간 75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해양으로 흘려보내는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메트로 마닐라와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는 2001년 「Ecological Solid Waste Management Act」를 통해
분리배출 의무화, 재활용 기반 지역 공동체 형성, 민간 협력 모델 도입 등의 정책을 도입했다.
이 글에서는 필리핀의 분리배출 시스템의 구조, 현실적 문제점, 시민참여 방식, 플라스틱 규제 정책,
그리고 한국과의 비교를 통해 자원순환 국가로 나아가려는 필리핀의 도전과 그 가능성을 살펴본다.
쓰레기 대란의 현실과 정책 변화의 배경
필리핀은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 소비 확대에 따라 폐기물 문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필리핀은 하루에 약 6만 톤 이상의 폐기물을 발생시키며, 이 중 약 30%는 여전히 매립 또는 불법 투기되는 실정이다.
특히 마닐라만과 파시그강 주변은 플라스틱 쓰레기 밀집 지역으로 국제 환경단체들로부터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리핀은 2001년 제정된
「생태적 고형폐기물 관리법(Ecological Solid Waste Management Act, RA 9003)」을 중심으로
분리배출과 재활용 기반의 환경 정책 전환을 시도해 왔다.
이 법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쓰레기 분리배출을 모든 가정, 사업장에 의무화
- 지역 정부(LGU, Local Government Units)의 자율 수거 운영
- 재활용 센터(MRF, Materials Recovery Facility) 설치 의무화
- 비공식 재활용 노동자 통합 및 지원
RA 9003은 단순한 수거 체계를 넘어서, 지역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분권형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분리배출 제도의 구조와 실행 방식
필리핀의 분리배출은 공식적으로 4가지 분류 체계를 따른다.
1. 생분해성 폐기물(Biodegradable) – 음식물, 채소 찌꺼기, 종이 등
2. 비 생분해성 폐기물(Non-biodegradable) – 플라스틱, 캔, 유리 등
3. 유해 폐기물(Hazardous Waste) – 건전지, 폐 약품, 페인트 등
4. 재사용 가능 폐기물(Reusables) – 옷, 가구, 장난감 등
법적으로는 모든 지역 정부가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을 제공해야 하며,
학교, 시장, 공공기관은 반드시 재활용 가능 물질과 일반 쓰레기를 분리하여 배출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도시와 농촌 간 인프라 차이, 예산 부족, 시민 의식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분리배출이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다.
특히 대다수의 시골 지역은 재활용센터(MRF)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비활성화된 경우가 많고,
쓰레기는 대부분 무분별하게 묻히거나 태워진다.
최근에는 자카르타와 비슷하게 "Barangay MRF 모델"을 통해
각 마을 단위에서 재활용과 쓰레기 분류를 직접 수행하는 구조로 개선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민간기업과 NGO가 협력해 모바일 수거 앱, 보상형 쓰레기 수거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재활용 네트워크와 비공식 노동자들의 역할
필리핀에서는 '비공식 재활용 노동자(Waste Pickers)'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도심 쓰레기 더미나 매립장에서 직접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선별하여 민간 재활용업자에게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필리핀 전국적으로 약 10만 명 이상의 재활용 수거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전체 재활용량의 4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기 위해,
Barangay(마을 단위) 협동조합 설립, 공공 재활용센터 고용, 기초 복지 제공 등의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은 비공식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몇몇 성공적인 사례들도 있다.
예를 들어, 세부(Cebu) 시에서는 재활용 노동자들에게 폐플라스틱 가방 제작 훈련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기업과 연결해 정당한 수익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구조를 구축해 호평받았다.
이처럼 필리핀의 자원순환은 여전히 비공식 경제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 구조를 제도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점차 늘고 있다.
플라스틱 감축 정책과 환경 캠페인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플라스틱 감축 조례를 도입한 국가 중 하나다.
2011년 케손시티가 비닐봉투 사용 금지 조례를 선도적으로 시행한 이후,
2024년 기준으로 필리핀 81개 주 중 약 50개 이상의 지자체가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 조례를 도입했다.
대표적 조치로는 다음과 같다.
- 비닐봉투 유료화 또는 금지
- 플라스틱 식기 및 빨대 사용 금지
- 재사용할 수 있는 포장재 사용 유도
- 친환경 포장재 사용 기업에 세제 감면 혜택 제공
또한, 환경 NGO인 “Mother Earth Foundation”, “Eco Waste Coalition” 등은
학교, 교회, 마을을 중심으로 "Zero Waste Community"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업사이클링 교육, 미션 챌린지, 분리배출 퀴즈 앱 등을 통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의 강점은 공동체 기반의 생활 속 실천 모델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한국과의 비교 : 기술 중심 vs 공동체 중심 시스템
한국은 분리배출 체계에서 RFID 음식물 종량제, AI 기반 자동 분류, CCTV 단속 등 첨단 기술 중심으로 시스템이 운영된다.
또한 전국 공통의 배출 기준과 투명 페트병 라벨 제거 등 제도적 일관성과 구체성이 매우 높다.
반면 필리핀은 법률과 의무화는 존재하지만, 실행은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기술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사람 중심의 참여와 교육, 비공식 노동력의 활용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정교한 시스템과 강한 행정력으로 접근한다면, 필리핀은 지속 가능한 공동체 중심 환경 실천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셈이다.
두 나라는 상반된 접근 방식이지만,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상호 보완적 모델로 글로벌 자원순환 정책 설계에 참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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